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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 자손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1.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
  2. 지존하신 여호와는 두려우시고 온 땅에 큰 왕이 되심이로다
  3. 여호와께서 만민을 우리에게, 나라들을 우리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며
  4. 우리를 위하여 기업을 택하시나니 곧 사랑하신 야곱의 영화로다 (셀라)
  5. 하나님께서 즐거운 함성 중에 올라가심이여 여호와께서 나팔 소리 중에 올라가시도다
  6. 찬송하라 하나님을 찬송하라 찬송하라 우리 왕을 찬송하라
  7.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송할지어다
  8. 하나님이 뭇 백성을 다스리시며 하나님이 그의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
  9. 뭇 나라의 고관들이 모임이여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다 세상의 모든 방패는 하나님의 것임이여 그는 높임을 받으시리로다

[ 묵상도움글 ]


누군가 “당신은 기도하십니까?" 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성도들은 금방 “물론이죠.”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하나님을 매일 찬양하십니까?” 라고 묻는다면 당황할 분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하지 않고 살면 마음에 죄책감마저 듭니다. 그러나 찬양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찬양은 어떤 사람이 진정 하나님의 참된 자녀인지를 분별해 주는 특징적인 행위입니다."만백성아, 손뼉을 쳐라. 하나님께 기쁨의 함성을 외쳐라.(1)" 하나님을 알고 온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 하나님을 찬송케 하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다윗은 일평생 찬송하며 살았습니다. 초대교회 전도자들도 전도만 한 사람이 아닙니다. 찬송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증거하다가 붙잡혀 매를 맞고 지하 감옥에 갇혔을 때 전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찬송은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기도는 다른 종교에도 있습니다. 우리 보다 더 열심히 기도하는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온 마음으로 기쁨의 찬양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누구나 흉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찬양이 그친 것은 기도가 그친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나라가 있으며, 하나님은 그 영원한 나라의 왕임을 알게 되면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가장 높으신 여호와는 두려워해야 할 분이시니 그는 온 세상을 다스리는 위대한 왕이심이라.(2)" 스포츠 영웅을 보고도 환호성을 지르고, 아름다운 봄 꽃이 피어난 산과 들을 보고도 환호성을 지르는데, 하나님을 바라보고서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찬양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었다면 저절로 찬양하게 됩니다. 이렇게 찬양하게 되어야 진짜입니다.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겠습니까? 오직 빛이신 예수님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빛으로 비추이기 시작하면 찬양이 시작됩니다. 주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주 예수님과의 친밀함은 어느 날 운명적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주님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 6:14 )" 이렇게 예수님을 믿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항상 주 예수님을 바라보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찬양하라고 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하신 명령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을 이기는 비밀이 찬양에 있기 때문입니다. 찬양이 능력이 있는 것은 찬양할 때, 하나님이 임하시기 때문입니다."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시 22:3 )"


[ 복음메세지 ]

한 젊은이가 스승에게 늘 세상에 대한 불만과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스승이 그 제자에게 소금 한 사발과 물 한컵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소금 한줌을 컵 속에 넣고 저은 뒤 그 물을 마시게 했습니다. 제자는 얼굴을 찡그리며 짜디짠 소금물을 마셨습니다. 스승이 물었습니다. "맛이 어떠냐?" 제자는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짭니다.” 그러자 스승은 제자를 맑은 호숫가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사발에 담긴 소금을 호수에 붓고 제자에게 그 호수의 물을 떠서 마시게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제자에게 물었습니다. 이 물도 짜나?" “안 짭니다." 스승이 말했습니다.
"같은 소금이라도 짠 맛의 정도는 담는 그릇에 따라 달라진다. 인생의 고통도 마찬가지이다. 네 속에 고통이 있다면, 네가 컵이 되지 말고 호수가 되어라.” 
고난이 큽니까? 고통이 심합니까? 삶이 어렵습니까? 미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면 먼저 자신의 마음이 어느 정도 크기인지 점검해보십시오. 내 마음이 간장 종지처럼 작다면 힘들고 짜증나서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호수 같은 사람이라면 전혀 느낌이 다릅니다. 복음은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간장종지 같을까요? 호수 같을까요? 우리가 복음을 알면 우리의 마음이 이렇게 바뀌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똑같은 문제, 똑같은 고통, 똑같은 사람이라도 마음이 전혀 달라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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