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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
-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 묵상도움글 ]
우리가 겪는 고통 중에 가장 큰 고통은 감추고 싶은 죄가 사람들에게 드러나고 그 죄로 인하여 죄 값을 치른다고 느낄 때입니다. 오늘 시편 3편에서 다윗이 겪는 고통이 바로 이런 고통입니다. 다윗이 평생 어려운 일을 많이 겪었지만, 시편 3편은 그 중에도 가장 고통스런 일을 겪었을 때 드렸던 기도입니다.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하여 피난 가면서 쓴 기도시 입니다. 원수가 아니라 사랑하는 아들이 자기를 죽이고 왕이 되겠다고 반역을 일으킨 것입니다. 이유는 다윗이 충신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는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본문에서 다윗의 놀라운 고백을 보게 됩니다. 사람들의 절망적인 수군거림을 들으면서도 다윗은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마치 자기 죄를 모르는 사람처럼 당당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살인죄, 간음죄를 지었던 다윗을 용서하시고 다시 세우셨을까? 우선은 다윗이 철저히 회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정확한 이유는 다윗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명심해야 합니다.
회개는 회개이고 믿음은 믿음입니다. 회개가 아무리 철저해도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결코 우리를 회복시키시지 못합니다. 우리가 죄에서 진정 벗어나 복된 자의 길을 가려면 분명한 회개도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십자가 복음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느낌을 의지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진리 위에 서야 합니다. 환경과 느낌은 수없이 변하여도 진리는 변함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내 안에, 나는 죽었고, 예수님은 나의 생명,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것은 영원한 진리입니다. 이 진리 위에 서서 고백할 때, 마음이 새로워집니다.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편 3편의 결국을 압니다. 결국 다윗의 믿음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머리를 들어주셨고 다윗의 영광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이라는 칭호를 받으셨습니다. 엄청난 일이지 않습니까? 다윗이 그런 사람이 된 것은 철저히 회개했고, 복주시는 하나님을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받을 조건을 따지셔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누구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우리를 무조건 사랑하시기로 결단하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가 그 증거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허물이 많고, 더럽고, 죄투성이지만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사랑하신다면 우리도 그를 사랑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이 분명하다면 우리도 우리를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기 시작하면 비로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 복음 메시지 ]
다른 종교에 없는 기독교에만 있는 가장 독특한 것은 ‘은혜’입니다. 모든 종교의 신은 선한 사람을 좋아하고 악한 사람을 벌주고 배척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나쁜 사람들을 사량하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어제 필립 얀시는 지난 목요일 강연 때 했던 이야기 하나를 다시 하였습니다. 특별한 강연 요청을 받았던 이야기입니다. 창녀였다가 새 삶을 살기로 결단한 40개국에서 모인 100여명의 여인들에게 ‘은혜’에 대하여 말씀을 전해달라는 요청이었답니다. 거절할 수 없다고 여겨져서 주최 측에 요청을 했답니다. “은혜에 대하여 말하고 싶지만 먼저 그들의 말을 듣게 해주세요.” 그래서 며칠을 100여명의 여인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이 얼마나 조롱과 학대를 받으며 살았는지를 들었습니다. 필립 얀시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당신들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믿어지지 않아 했습니다. 마 21:31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이 말씀을 듣고 깜짝 놀라더랍니다. 필립 얀시가 그들에게 물었답니다. “왜 하필 여러분이 가장 먼저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오랜 시간 침묵이 흐른 뒤 불가리야에서 온 창녀가 더듬더듬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는 기쁨으로 삽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닙니다. 우리에겐 내려다 볼 사람들이 없습니다. 우리가 가장 밑바닥에 있으니까요! 가족도 친척도 친구들도 다들 나를 창피해 합니다. 사람이 가장 밑바닥에 떨어졌을 때, 진정으로 은혜를 갈망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것이 가장 정확한 은혜에 대한 정의 였다고 했습니다. 가장 밑바닥에 있다고 느끼는 자가 은혜를 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간음하다가 잡혀온 여인을 보면서 사람들은 두 부류의 사람을 보았습니다. ‘우리같이 깨끗한 사람’과 ‘저 여자처럼 더러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님도 두 부류의 사람을 보셨습니다. 은혜가 필요한데 은혜를 갈망하는 사람과 똑같이 은혜가 필요한데 전혀 은혜에 대한 갈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은혜는 값없이 주시는 것이지만 손을 내밀어 받아들이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절망은 영적 교만이나 안일함 보다 더 큰 축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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