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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구약/스바냐

스바냐 소개 - ZEPHANIAH

리틀 헤밍웨이 2021. 2. 1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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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스바냐 저작 연대  B.C. 640 - 630년 사이
기록 장소  유다 기록 대상  유다 백성

핵심어
및 내용

 1. 여호와의 날  2. 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  3. 메시아 왕국그이 도래
 핵심어는 '보복', '주의 날', '남은 자들'이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는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에 모든 나라는 다가올 '주의 날'에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을 남겨 두시고, 그들 가운데 함께하셔서 그들을 위로하시며 기쁨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스바냐라는 책의 제목은 선지자 스바냐의 이름을 따서 지었으며, ‘여호와께서 숨기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는 2장 3절의 말씀을 상기시키는 이름입니다. 그는 4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족보를 가장 자세히 소개하고 있는 선지자입니다: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었더라.” 세 사람의 이름은 익숙하지 않지만, 히스기야가 우리가 아는 유다왕 히스기야가 맞다면 스바냐는 왕족출신입니다. 예레미야와는 활동시기가 거의 비슷합니다.

스바냐는 유다가 므낫세왕의 55년에 걸친 장기간의 통치(697-642 B.C.)를 벗어나 아몬왕 이후 요시야왕 시대(640-609 B.C.)에 사역을 시작합니다. 스바냐가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를 언급한 것으로 보아, 니느웨가 망한 주전 612년 이전에 그의 사역이 이루어졌습니다(습 2:13). 므낫세는 악한 왕의 대명사였으나 요시야왕은 의로운 왕입니다. 요시야왕이 뒤늦게 영적 개혁을 단행하지만 이미 유다가 영적으로 너무 오랜 시간 타락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유다를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계획을 변경시키기에는 늦었습니다. 스바냐는 이런 상황에서 종말의 날인 ‘여호와의 날’을 예언하며 유다 백성들의 마음을 준비시킵니다.

스바냐는 사회와 종교 지도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백성들을 올바로 이끌어야 할 지도자들을 오히려 백성들을 뜯어먹고 살육하는 맹수로 비유합니다. 방백들은 먹이를 찾아 다니며 부르짖는 사자와 같고, 정의를 실천해야 할 재판장들은 밤의 이리로 둔갑해 대낮에 해야 할 재판을 뇌물과 비리를 통해 밤중에 결론을 내는 자들입니다. 악한 일은 처리를 어찌나 깔끔하게 하는지, 이튿날 아침까지 남겨두는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범죄를 퇴치하는 자들이 아니라 범죄의 프로페셔널입니다. 종교지도자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하여 먹고 사는 자들이며 계시의 말씀을 자신의 의견으로 대치하는 자들이며 오히려 성소를 더럽히는 자들입니다.

‘여호와의 날’로 불리는 종말의 날에는 하나님의 백성들만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열방들이 심판대에 오릅니다. 본문에 언급된 블레셋, 모압, 암몬, 구스, 앗수르는 전형적으로 유다를 괴롭혀온 나라들로, 모든 열방들을 대표하여 기록된 것입니다. 그때에는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심판이 진행이 될 것입니다(1:2). 그러나 모든 심판은 파괴와 멸망이 아니라 모든 죄악을 제거하는 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습니다(3:11, “. . . 제거하여 네가 나의 성산에서 다시는 교만하지 않게 할 것임이라”).

일단 심판으로 정리가 된 후에는 여호와께서 열방과 유다 백성들을 구원하고 모든 명예를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신앙을 지키고 타협하지 않는 신실한 자가 될 것을 격려합니다. 여호와의 날이 지나고 나면 그들은 보호를 받을 것이고 구원의 기쁨을 노래할 것입니다(“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 지어다,” 3:14).

스바냐는 유다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날’을 준비시키면서 구원의 희망을 잃지 않을 것을 격려하기 위하여 쓰여졌습니다. 스바냐에서 ‘남은 자’는 신실한 자를 가리킵니다(2:9; 3:13).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기업을 주실 것입니다(2:9). 현대에서 ‘남은 자’는 상황에 관계없이 자신의 신앙을 끝까지 지키고 승리한 자를 의미합니다. 힘들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세상과 타협하거나, 신앙의 계속적인 성장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남은 자’의 대열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믿는 자는 말씀을 붙들고 복음을 위해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사명을 완수하는 자이며, 그것이 ‘남은 자’의 모습입니다. 스바냐를 묵상하며 여호와의 진노의 날에 ‘숨김을 얻는’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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